코뚜레가 복이다.
오늘 새벽 예배때 목사님께서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 '코뚜레가 일한다.'를 예화로 들으셨는데 읽은 적이 있는 글이지만 교회에서 들으니 새삼 맏 송아지가 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조적이지만 유쾌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동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미소가 두 마리의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어느덧 코뚜레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먼저 맏송아지에게 코뚜레를 하려고 하자 맏 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하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에게는 제발 제발 코뚜레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처럼 되어 일도하지 않을텐데."
"아닙니다. 주인님, 코뚜레를 해야만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옛날 생각입니다. 두고보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곱절이나 일을 잘 할테니까요."
맏 송아지는 자신의 약속대로 코뚜레가
없이도 스스로 멍에도 메고 쟁기도 끌었습니다. 동생 송아지는 주인의 명령대로 복종하여 아프고 괴롭지만 코뚜레를
꿰었습니다.
송아지들은 어느덧 자라 어른 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코뚜레를 하지 않은 맏
송아지가 차츰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시키려 하면 삐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주인에게
뒷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코뚜레를 한 동생 소가 들에서 돌아와 보니 형님 소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행방을 물으니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일도 안하고 꾀만 부려서 도살장으로 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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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성이 맏송아지처럼 코뚜레(구속과 속박)를 지극히 싫어했습니다. 저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코뚜레 없는 송아지의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한편 타고난 인정은 있어서 베풀기도 좋아했지만 열심히 일하고나서 이만큼 봉사하고 헌신했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치기도 잘하고 때로는 분풀이로 뒷발질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
아, 저는 제가 잘나고 똑똑해서 맏송아지처럼 살면서 '나는 자유하다, 대한민국 여성 5%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나는 누리고 있다. 신앙도 자유하려고 믿는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나무랄 것이 없는 건강한 상태라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교회 다닌지 16년째요, 성경을 3번 정독했고 수십번의 부분독과 수백번예배를 드렸어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하나님, 코뚜레가 복이군요."하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코뚜레 꿰이고 가족사랑에 코뚜레 꿰이고 지혜로운 상사와 선배들에게 코뚜레를 꿰이는 일이 내가 사는 길이요, 참자유를 누리는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