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언덕>/묵상글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소망의 언덕 2006. 5. 31. 17:08

지금 이별의 아픔보다 자신의 처지로 인해 더 슬퍼하고 있을 친구에게 이 시를 바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하늘 축복 가득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큰그릇으로 빚어지시길 기도합니다.

        

 

 

 

 

            생명

                                                            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