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람(1)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지 않아도 생각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이 있다.
동네 어귀에 가게 하나 없이 포장을 치고 잔치국수니 김밥이니 팔던 아줌마가 있었다. 고단한 생을 산 듯 얼굴에는 주름이 깊고 얼굴빛도 거무스름하다. 자주 들리진 않았지만 어쩌다 들려 김밥도 먹고 잔치국수도 먹곤 했다. 그 때마다 가난해도 참 진실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분은 불은 국수를 팔지 않았고 밥알이 마른 김밥을 팔지 않았다.
얼마뒤, 포장마차 바로 건너편에 유명 브랜드의 김밥집이 문을 열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동네 돈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포장마차집에 비해 시설이 편했고 새벽부터 연다는 장점이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거의 모든 메뉴가 유명 브랜드의 김밥집에 다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 현장학습 때, 또 우리아이 반 친구들에게 한 턱 쏠 때 나도 당연히 브랜드 김밥집의 고객이 되었다. 그 집엔 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김밥이 말리고 썰어져서 포장되기를 기다리고 있곤 했다.
나는 은근히 그 아주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브랜드 김밥집의 김밥은 짜거나 밥의 질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그 집은 2,000여 세대 아파트의 상권을 독점하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느날 맞은 편에 다른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생겼다. 역시 가게 앞에는 '한 줄에 천원, 새벽 6시부터 팝니다.' 라고 씌어 있었고 다른 김밥집과는 달리 순대를 팔고 있었다. '김밥이 거기서 거기겠지, 더군다나 순대를 파는 김밥집인데...'라고 대수롭잖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김밥을 그리워했다.
해가 매우 짧아진 겨울, 늦게 퇴근하면서 순대를 사러 맞은 편 김밥집에 처음 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그리워하던그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오너였던 것이다.
"그렇게 고생하시더니 번듯한 가게를 얻으셨군요. 한동안 보이지 않아 걱정 많이 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라고 하니 아들이 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가게를 얻어줬다면서 추운 겨울에 일거리가 마땅찮은 아들과 함께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식구들 저녁 대용으로 순대와 김밥 몇 줄을 달라고 하니 뜨거운 밥으로 새로 싸서 오뎅 국물과 함게 싸준다.
하루는 김밥을 썰다가 조금 터졌다면서 미안하다고 터진 것은 물론 온전한 것 한줄을 더 주었다. 아니라고 이렇게 장사하면 무엇이 남느냐고 안받으려는 내게 한사코 손에 들려준다.
이 아줌마는 나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장사속으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그 분의 마음이 그런 것이다. 머리를 굴리고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진실한 사람이란 이런 분이 아닐까?
이사오던 날 인부들의 아침식사로 김밥을 살겸 마지막 인사를 하러 들리니 이사가서 잘 살라고 식구들 다 건강하라고 문밖에까지 따라나와 친척 전송하듯이 한다.
가끔 그 분이 그립다. 한줄에 천원하는 그 맛있는 김밥도 ...
지금 우리동네에는 천원짜리 김밥이 없다. 아니 한줄에 이천원짜리일지라도 새벽 6시부터 김밥을 파는 가게도 없다.
처음 이사와서 큰아이 수련회 떠나는 날 아침에 당연히 김밥을 사러 나가니 다들 문조차 열지 않았다.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결국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사서 보냈다. 으이구, 나이롱 엄마~~~. 덕분에 아이들 현장학습이 있는 날은 몇 년만에 엄마표 김밥을 싸주고 있다.
이제껏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진실한 사람'하면 나는 이 아줌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