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언덕>/자유와 대자유

다시는 자유를 꿈꾸지 않으리

소망의 언덕 2007. 2. 19. 18:54

요즘 들어 한가지 새삼스럽게 깨달아진 것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이 곧 그것이다. 사는 곳이 불편하다면 보다 편한 곳을 향하여 이사갈 것이며, 임지를 옮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선 출가도 혹은 가출도 혹은 새로운 만남과 이별도 있으리라.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이 한 밤도 사는 곳이 불편한 자들은 편한 곳을 향한 꿈을 꿀 것이며 영어(囹圄)에 몸에 얽힌 자들은 자유를 꿈꾸리라. 이 한밤도 낮동안 태양을 향하여, 물을 향하여, 공간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발을 내뻗던 식물들은 꿈을 꾸리라. 좀 더 편한 곳으로의 정착을 소망하며...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러나 쉬임없이 흐르는 물의 삶은 고달프다. 가끔 흐름을 멈추고 이끼가 끼도록 해보자. 가뭄에 이끼끼듯이... 가물어보자. 영적 가뭄을 겪어 본 자가 영적 목마름을 이해할 것이다. 풍부에도 처해 보고 빈곤에도 처해 보자. 풍부한 자들과 빈곤한 자들을 이해할 것이다.

 

가난한 삶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젊은 동료가 있었다.

그 분은 나의 직장 선배였는데 아주 드물게 부자집 딸이었고, 부서가 달랐다.

그 때는 80년대 중반이라, 내가 근무하던 직장은 대학을 빨리 마치고 취직이 보장되어 대개 가난한 집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어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회자되었다.

 

처녀적이라 남의 말에 대꾸를 할 수 있는 안목도 없었고, 오후에 마실 다닐 주변머리도 없어 몇몇 동료들과만 친한 직장생활을 하던 터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쌀이 없으면 라면을 먹고 라면이 없으면 빵을 사먹으면 되지 왜 굶어? 참 이해할 수 가 없네~~"

그 날도 그 부잣집 공주 출신 동료가 천진한 웃음을 웃어대며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상사들과 동료들을 향하여 이전에도 몇 번 들어 본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모두들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를 못하고 부지런히 점심들을 잡숫고 계셨다.

 

내가 들어가자, 그 공주 출신 동료가 나를 향하여 지원 요청을 해왔다.

"자기야, 그렇잖아? 자기도 이해할 수 없지?"

 

그 때, 직장을 새로 옮겨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 나는 순진하게 대꾸했다..

"당신은 머리가 안 좋은가봐요, 뭐 그리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가요?"

순간 폭소가 터졌다.

모두들 그 분의 공주병이 고소하고 통쾌했던 것이다.

그 분도 하하 웃고 말았지만 이일은 두고두고 직장에서 회자되었다.

이해 안가는 것이 많음을 자랑하지 말자, 머리가 나쁜 사람으로 비쳐질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시오, 저렇게 사시오, 권면하고 충고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자.

지금 그분은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편한 것일수도 있으리라.

 

그 분에게 나의 충고는 다리를 이쪽으로 머리는 저쪽으로, 팔은 이쪽으로 하며 무리한 요구가 될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자유, 자유를 무던히도 그려왔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자유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자유롭다.

나는 이미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