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튿날, 셋째 오빠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한편의 엽기적인 드라마에 출연한 기분이었다.
귀여운(?) 치매에 걸린 엄마는 여전히 해맑고 작은 모습으로 두 손을 꼬옥 잡는 나를 한참 응시하시고는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찐밤을 까서 먹여 드리자 몇 번 받아 잡숫더니 나를 향해 말문을 여신다.
"으응, 삼포에 사는 그 사람이구만."
"(나, 주저하지 않고 농담으로) 예, 맞아요. 삼포서 왔어요."
"......?"
"......!"
"아니, 삼포가 아니고 군업 사는 동생이 왔구먼, 동생이 왔어"
"예, 우리 언니, 총명하기도 하시지 동생이 왔어요."
"동생이 나를 보러 왔어, 동생이..." 하시면서 고맙다는 듯이 나를 말갛게 쳐다보신다. 옆에서 오빠와 올케 언니가 엄마와 나의 코메디에 박장대소한다.
셋째 오빠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술이 거나하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여러날 고민했던 말들을 꺼낸다. 결혼전 나의 보호자로 돌아온 듯하다. 나에게 이런저런 주문도 한다. 승진하라고, 서울로 들어오라고, 엄마 주민등록 떼어가서 내신에 유리한 서열에 진입하라고... 오빠가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는 이야기를 듣는 내 뺨에는 굵은 소낙비가 내린다.
오빠는 나를 웃기려고 가슴에 묻어둔 형제 사랑을 농담섞어 하나씩 꺼내 놓는다. 큰오빠가 편찮으시고 둘째 오빠도 고난중이니 셋째가 맏형이 된 듯하다. 동시에 엄마를 부양하는 셋째 올케가 실제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한다. 야곱이 에서를 제치고 영적 장자의 반열에 올랐듯이...
그런데!!!
이런저런 형제 이야기를 맏형의 심정으로 토로하던 오빠가 갑자기 팔뚝을 치켜들며 두군데의 선명한 멍을 보여주며 엽기적인(?) 드라마는 전개되었다.
"동생아, 이 팔뚝 봐라. 언니한테 맞아서 그렇다."
"꼬집혔어요? 장난했어요?"
"아니, 맞았다니까..."
"그럴리가... 뭐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렸어요?"
"아휴~~~ 동생아, 어깨좀 주물러라. 오십견인지 뭔지 원래 아픈데 언니한테 맞아서 여기도 멍들었다."
나, 오빠의 어깨를 주무르며 올케언니한테
"뭔일이 있었수?"
언니, 웃으며
"난 몰라. 난 오빠 안때렸어. 안때렸는데 자꾸 맞았다 그러네~ 호호호"
급기야, 오빠가 엉덩이를 까보이며(?)
"여기 좀 봐라"
"으이구 망칙해라, 오라버니, 자중하세요. 이성을 잃지 마시라구요."
근데 흘낏 보아도 붉은 멍이 손바닥 반의 크기는 되었다. 평소에 너무나 금슬이 좋은 부부인지라 진짜 이유를 물으니 오빠가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언니가 엄마 모시느라 스트레스가 많잖니?"
"어."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릴 때까지 나를 때려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만들어놨다."
"맨정신으로?"
"처음으로 술을 몇잔 먹고는...."
하면서 과일 먹던 젓가락을 나에게 주며
"이 걸로 언니 좀 혼내줘라, 내 대신..."
하자, 언니가 또 안그랬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시종일관 두 부부는 웃는다.
그러면서 오빠는 엄마가 우리 8남매를 인물이 훤하게 잘 낳아줘서 자기한테 올케 언니가 시집왔다며 행복하게 웃는다. 둘은 하하호호 웃는데 나는 콧등이 시큰거렸다.
10분에 한번씩 화장실을 가는 엄마, 휴지를 변기통에 마구 집어넣어 허구헌날 막히게 하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한 달 수도 계량기가 35톤을 가리키게 하고, 며느리를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다가도 한번식 때리고...
뱃속에서 나온 딸도 못모시는데 예수님의 예쁜 신부인 올케언니는 웃음을 잃지 않고 어린애 다루듯 엄마를 모셔준다. 그러니 오죽 스트레스가 쌓이겠는가? 교회가서 회개하고 기도해도 스트레스가 누적되더니 요즘 머리끝까지 차 올랐단다.
엽기적이게도 오빠는 매를 맞아줌으로 언니의 스트레스지수를 단번에 제로로 떨어뜨려 놓았다.
시누이인 나는 오빠를 때려 전치 2주(?)의 멍이 들게 한 언니가 밉기는커녕 사랑스럽고 고맙다. 또 엽기적인 방법이지만 아내를 지극히 사랑함으로 엄마에게도 효도를 한 오빠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하하하, 우리 언니, 오빠 같은 부부 있으면 나와보세요.잉~~
성경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창세기 2:23-24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소망의 언덕> >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영혼의 정원을 가꾸시는 하나님 (0) | 2006.10.20 |
---|---|
내 영혼의 토양 검사 (0) | 2006.10.18 |
응답이 '멸망'이라니 (0) | 2006.08.24 |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까? (0) | 2006.08.21 |
모기의 밥, 사탄의 밥 (0) | 2006.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