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때, 하이힐은 내 필수품이었다. 짖궂은 오빠들이 황소눈깔이라 놀리던 큰 눈에 깡마른 44사이즈의 몸매에 갈색, 하양, 파랑, 검정의 하이힐을 사시사철 신고 다녔던 생각이 난다. 한겨울 가장 추운 날씨에도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착용하고 가서 동료 총각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버스를 타기 위해 군데군데 얼음이 언 눈길을 제법 걸어 나올 때, 아버지가 내 하이힐을 벗게 하고 당신의 털신을 신겨서 바래다 주셨던 일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출산과 더불어 하이힐은 신발장 구석을 지키더니 이윽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하나 둘, 퇴출되었고 나는 대한민국의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갔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였으니 직장에서의 퇴근은 육아와 가사의 출근을 의미했다. 얼마나 바쁘고 힘들게 살았던지...거기다 교회, 구역예배 열심히 다녔으니 더우기 낮은 굽의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펄펄 날아다녀야했다. 하긴 몸매가 66싸이즈를 지나 77이 편한 땡벌(땅벌) 비슷하게 되어서 잘 날지도 못했지만...흐흐~~~
이젠 아이들이 왠만큼 커서 하이힐을 신어도 되련만, 편한게 좋다는 관성의 법칙때문일까? 아니면 10년 전,약속 시간에 쫒겨 하이힐을 신고 뛰다가 넘어져 인대가 늘어나 1년 동안 뛰지 못했던 불편한 기억 때문일까? 하이힐은 불편한 것이고 나를 몹시 피곤하게 한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고 또 어쩌다 신어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어 아쉽지만 절교하고 살았다.
그래서 주위 분들에게 불만도 많이 샀다.
숙녀가 아니라느니, 애들같은 신발만 신는다느니...
새해 들어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애들도 컸고 몸매도 가다듬어 올해는 좀 숙녀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백화점에 가서 옷도 좀 사고 보석이 박힌 예쁜 하이힐을 샀다. 거의 10년만이다. 건강이 증진되었는지 하이힐을 신을 만하니 정말 다행이다.
여러모로 사회적인 체면을 갖춰야 했던 어느날 아침, 소품으로 발에 착 감겨드는 하이힐을 신으며 기분좋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행복한 여자는 하이힐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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