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언덕>/묵상글

세련된 거절

소망의 언덕 2006. 6. 4. 18:19

  세련된 거절

 

  사노라면 원치 않는 손님들이 찾아와 몇 분 혹은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에서 몇 년간의 유숙을 청하기도 한다.

 

  카드나 보험가입, 상품구매를 목표로 찾아오는 영업사원들은 5분도 길게 느껴지는 불청객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거절에도 경륜이 쌓이다 보니 거절하는 방법도 많은 진보(?)를 거듭해왔다.

  " 저는 이미 꼭 필요한 것들은 full로 가입을 했기 때문에 더이상 필요한 상품이 없네요."

그러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무엇무엇을 들었는지 캐묻는다.

  "그걸 말씀드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하고 부드럽게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 황급히 알겠다고 하고 실례했다고 하고 돌아간다.

  그래도 신상품의 잇점을 설명하려 애쓰는 분들에게는

  " 저는 카드나 보험은 한 개면 족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관리할 능력이 없거든요."

그래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원들한테는

  '팜플렛을 놓고 가시면 나중에 보겠습니다." 하며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러면서도 뒤는 개운치가 않다.

 

  두번째, 몇 시간을 유숙하고자 하는 불청객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의 부류는 거의 없다.

지식산업사회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바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아찔해지는 기억이 있다.

반죽 좋은 친척이 우리집 인근의 군부대에 있을 때 외출 등의 시간이 주어질 때 용돈을 바라고 집에 무조건 찾아오곤 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연륜으로보나 경제활동의 경력으로보나 조금일지언정 용돈을 얼른 쥐어줄 마음과 환경이 구비되었지만 그 때는 신혼시절에 집을 외상으로 사서 달마다 갚던 시절이어서 월급을 타고 3일만 지나면 돈이 없던 시절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현관에 군화가 놓여있곤 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밥을 차려주고 같이 TV를 보면서도 마음이 불편했었다. 문제는 용돈을 바라고 온 그에게 건네줄 돈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그런 일을 겪다가 그가 오면 일부러 꾸며낸 외출을 하며 따돌리기도 했었다.

  몇 년전 외삼촌상을 당하여 시골에 갔을 때 은행과장으로 있는 막내동생과 지금은 어엿한 골프신문사 사장이 되어있는 그 반죽좋은 조카한테 그 때의 고충을 말하니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마디로 '스토커 같았다 '가 결론이었다.

  지금도 가끔 농담삼아 그 조카한테

" 이젠 네가 이 고모한테 용돈 좀 줘봐라." 하면

" 고모가 늙으면 드릴게요." 하면서 슬그머니 웃는다.

그 때 내가 어떻게 그를 세련되게 거절했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니, 거절하지 못하여 마지막 남은 생활비를 털어서 주며 속은 상했지만 이제 그 애기를 하며 웃을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몇 달간의 불청객을 맞아 곤란했던 일이 있다.

새로 구한 직장이 우리집 근처라고  무작정 쳐들어온 시댁쪽의 직계존속, 아 퇴근시간이 무서워졌었다.

 

  몇 년간 불청객이 가끔 집으로 찾아와서 곤란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 분은 내 친 오빠이다. 중동지역 이스마엘의 땅에 가서 오일달러를 벌어 부자(?)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 피같은 돈을 노름으로 다 탕진하고 결혼하자고 쫒아다니던 아가씨들 다 물먹이고 아직 혼자 살며 가끔 목돈을 얻으러 아주 친한 형제의 얼굴로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된 이야기이다.

그 당시 나는 괴로웠지만 그들은 찾아올 대상인 내가 있어서 좋았겠지.

그러고 보면 세련된 거절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