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언덕>/나의 신앙간증

나를 만든 여덟 명의 조련사(1)

소망의 언덕 2006. 7. 20. 16:49

  나는 남자 형제들 틈에서 자랐다.

  8남매중의 6째 외딸이 바로 나다.

  으아악! 그게 사실인데 어떨 때는 나도 놀란다.

  억세고 힘세고 빡세고 울퉁불퉁한 남자들! 그 틈에서 자란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긍정적 영향들>

 

1. 남자 무서운 걸 모른다.

 

  8인8색(아버지 포함 8남자)이라고 8가지 유형의 남자를 겪어서 왠만한 남자는 속이 다 보인다. 물론 형제와 사회인과 남녀간의 관계는 다르겠지만 웬만한 유형은 다 포함된다고 봐도 과히 무리는 아닌 듯 싶다.

 

  가. 낭만주의자 - 투잡 아버지

 

  아버지는 대단한 낭만주의자로 약주한잔 들이키시면 동네 입구부터 노래란 노래는 다 불러제끼시고 나타나시기 때문에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어댔다.

그리고 아버지는 온동네 사람들과 다 친했다.

  밥술께나 먹는 집의 2남2녀중 막내아들이셨는데 6.25 전쟁으로 인해 장손이 되셨다. 농사꾼이었지만 농사를 싫어해서 목돈을 만지는 상업활동을 겸하셨다.

  일찌기 투잡(two  job)인이셨다.

  아버지를 닮아 나도 낭만주의자고 부자는 아니지만 돈을 지배하고 산다.

 

  나. 자수성가-인민무력부장-hero 큰오빠

 

  큰오빠는 대단한 미남으로 서울 부잣집의 사위로, 재산가로, 동생들의 멘토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요, 우리집의 기둥이다.

  그러나 성격이 무뚝뚝하고 독재파쇼주의자라 동생들이 쩔쩔매었다.

 

  그러나 나는 쩔쩔매지 않았다. 나는 그 딱딱함 속에 들어 있는 큰오빠의 여린 영혼을 보았고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줄 알았기에 오빠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집안을 일으키려는 열정이 너무 강해서 독재파쇼를 너무 강하게 행할 때 다른 형제들은 주눅이 들곤 했지만 나는 인권 운운하며 지적하고 대항하였다. 그러면서 강한 자에게 투사요, 권세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불의(?)에 굽히지 않는 절개를 훈련하였다.

 

  다. 심사숙고-햄릿형 뚝자-둘째 오빠

 

  둘째 오빠는 평범속의 행복을 추구하는 분이었다.

  있어야 할 곳에 묵묵히 있었고 보통 또래들의 정서와 언어를 구사하였다.

  생각이 너무 깊어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변치 않는 바위와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말소리가 무뚝뚝해서 별명이 뚝자였는데 궂은 일 힘든 일에 사려깊게 행동하여 주위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여동생인 내게는 규율부장 노릇을 빼먹지 않았다. 인권운운하며 큰오빠한테 뻣대고 반항하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도 할 도리는 다하라고 그래야 내가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대서 한동안 밉기도 했지만 그것이 훈련되어 내게 유익이 되어 나는 잔소리 하는 남자들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라. 상냥, 젠틀-효자맨-셋째 오빠

 

  우리 8남자 중에 성격미남이 있다면 누구라도 셋째 오빠를 꼽는다.

  셋째 오빠는 바탕이 선하고 상냥하고 부지런하고 늘 껄껄 웃곤해서 나는 셋째 오빠한테 고민이나 상담을 하며 자랐다.

  다른 오빠들은 툭하면 내게  "여자애가 왜 자전거를 타냐?, 여자애가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 그렇게 해서 시집가면 친정 부모 욕먹인다."하며 성차별을 해대곤 했지만 셋째 오빠는 언제나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보면 상냥하게 웃어주고 항상 마음이 담긴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곤 하였다.

  그래서 엄마는 8남매중에 셋째 아들을 지목하여 "나랑 같이 살자."고 하셨고  신실하고 야무지고 마음씨 넓은 크리스찬 셋째 올케랑  아무도 못모시는 치매걸린 엄마를 모시고 산다.

  여담으로 고령의 엄마는 귀여운(?) 치매에 걸리셨다.

사람을 못알아보셔서 아들이나 딸,며느리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깍듯이 존대말을 하시는데 표정도 아주 예의바른 여학생 같으시다.

  나는 셋째 오빠가 있어서 어려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

 

  마. 두근두근 새가슴-울퉁불퉁 생고구마-넷째 오빠

 

  넷째 오빠는 마음이 약하지만 성격이 울퉁불퉁하고 고집이 세어서 젓가락으로 찔러도 팔만 아픈 생고구마에 비유된다. 노력형의 대표자급인데 7전8기로 정부청사 사무관까지 올랐다. 삼수를 해도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비애의 시절, 의지가 약할대로 약해진 오빠한테 내가 한방 말의 강펀치를 날려 오빠를 울게 한적이 있다.

  "큰오빠가 무서워서 큰오빠앞에서는 공부하는 척 하고 안보면 자거나 논다며?

남자가 돼 가지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력은 못할지언정 열심히 돈벌어 동생들 뒷바라지하는 큰오빠한테 무슨 비겁한 행동을 하는거야?"

  이 말을 들은 넷째 오빠가 울면서 "여자인 네가 나보다 낫구나!"했던 적이 있다.

  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말은 한다는 충신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서 큰오빠한테 할말을 타박타박하는 걸 보고 '남자 배짱보다 네 배짱이 낫구나!"하고 말해줌으로써 여자인 나에게 두둑한 빼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고무시켜주었다.

 

-나를 만든 여덟 명의 조련사(2)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