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인생의 가장 큰 화두는 자유였다.
내게 자유에 대한 인식을 처음으로 싹틔워 준것은 오빠들의 부당한 성차별적 규제 때문이었다. 계집애가 앞가리마를 탄다느니, 자전거를 탄다느니, 그러면 시집가서 부모 욕먹인다느니...천성이 영악하지 못했던 나는 고스란히 인적 환경의 규제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앞가리마를 타고 긴파마머리를 양쪽으로 섹시하게 늘어뜨리고 싶어도 지겹도록 옆가리마만 탔고 자전거를 배우다 말았고 남자들 위주의 식사시간 등 일상생활에서 가족을 통한 성차별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그래도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자유함을 만끽하고 살았다.
오빠들이 많아서 나에겐 힘든 농사일을 거들 의무가 전혀 없었고 천성이 희생적인 엄마 덕분에 집안일을 강요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도와드리지 않는다고 꾸중 몇 번 하신 기억과 여름철에 감자깍기가 싫어서 학교에서 손을 조금 베었을 때 다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창고를 붙이고 꾀병을 부리다가 딱 한번 엄마한테 혼난 일이 있었을 뿐...
고등학교 때부터 읍내에 나가 자취를 했기 때문에 조금씩 부자유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연탄 갈기, 식사 짓기, 방세, 용돈... 이런 것들에 의해 나는 부자유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우선 대학생이 되고 졸업후 취직이 되어 공부와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마음에 꼭 맞는 남자와 결혼하여 정신적인 자유까지 누리게 되면 행복할 것 같았다.
마침내 꿈꾸던 것들을 어떤 것은 쉽게 어떤 것은 매우 어렵게 얻었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자유와는 거리가 더욱 멀어져서 내 삶이 부자유를 향해 치달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끔 되었다. 석가모니가 호사스런 왕자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를 득하기 위해 출가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나날이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부자유의 요인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돈, 사고방식의 차이, 성차별, 헌신과 희생의 강요..., 그런 것들의 부산물인 미움과 증오, 질투와 탐욕...
내 삶을 추진해 나가는 나란 주체는 더이상 자신만만하고 풋풋한 내가 아니라 지치고 힘들고 낡은 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고집세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내가...
내 삶의 엔진을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 갈아끼울 때도 하나님께서 목숨을 위협하며 거의 강압적으로 했어야 할만큼 나는 목이 곧은 백성이요, 부자유한 자였다.
이제 예수님께 속한 삶을 산지 16년 째, 아직 갈길이 멀고 멀었지만 그 동안의 세월이 부자유를 자유로 바꿔준 고마운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려 한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거칠 것이 없는 대자유에 대한 성찰과 함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 :32)
'<소망의 언덕> > 자유와 대자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치지 말라(1) (0) | 2006.11.29 |
---|---|
존재의 자유 (0) | 2006.11.28 |
대자유를 누리려거든 (1) | 2006.11.22 |
죽으면 죽으리라 (0) | 2006.11.15 |
여자로서의 자유 (0) | 2006.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