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님이 오신 이유는 죄의 용서와 죄성의 치료
흔히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지만 죄의 용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끝없는 악순환에서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 오셨다.
비유: 뇌에 이상이 있어서 살인을 저지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정황이 참작되어 용서받았다. 그러나 뇌를 치료하지 않아 결국 사망하였다.
9.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
지혜와 지적인 측면의 이해가 영적 진리의 빛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쉽게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인위적인 합리주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주신 영성인 순수한 직관을 찍어 누른다. 주님께서 어부와 같은 이들을 제자로 부른 이유와 일치한다. 머리가 마음보다 우선했던 가룟유다는 그의 죄성으로 인해 악의 도구가 되었다.
비유: 새의 생명을 연구하려던 과학자가 새의 신비를 벗기기 위해 새를 해부하자 결국 죽어버렸다.
10. 진정한 신학교는 주님의 발아래에
선다싱도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다. 헬라어, 분파 등등 유익하고 흥미있는 것들을 많이 배웠지만 영적 유익은 그다지 주지 못했다. 진리의 실체를 발견한 것은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얻었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는 주님의 발아래에 있다. 세상의 신학교에서 몇 년 배운 것을 신학교의 근본이신 주님의 발아래에서 단 몇 초 만에 배웠다.
메세지: 삶이 없는 교육은 위험하다. 마른 뼈처럼 영적 진리를 살피는 일을 중단하라, 뼈를 가르고 생명을 주는 정수(精髓)를 취하라
11. 주님이 원하시는 것
주님은 입술의 찬양보다 내적인 감사,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넘치는 기쁨에 열려있는 마음을 더 원하신다.
12. 하나님을 바라보면 안전하다.
절벽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절벽은 겨우 몇십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의 높이가 수만 Km일지라도 전혀 두렵지 않다. 왜그런지 아느냐? 위로는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려다 볼 때는 우리가 그 분안에서 안전하며 아무런 위험도 없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 분에게서 얼굴을 돌리면 진리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까 두려운 것이다.
13. 주님의 손을 꼬옥 붙잡으라.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치면 넘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있으면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6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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